햇빛이 나른한 주말의 오후, 오랜만에 미세먼지 하나없이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주말을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을 뒤로한 채 고풍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저택 안에선 때 아닌 종이더미들과의 소리없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바닥을 보기 힘들 정도로 곳곳에 흩어진 서류들과 서적들이 마치 마감 전 출판계 편집부를 방불케하는 현장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
"좀만 더 옆으로 가봐." "여기요?" "아니 허리를 살짝 오른쪽으로 더." "이렇게요?" "어어어어, 지금, 지금 된 것 같은데?! 뭐 느낌오는거 없어?? 막 내옷같고 내집같고 그런거??" "음...." 업무중일 김대표를 대신한 보호자가 점심시간이 되어 잠시 자리를 비운 새를 틈타 병원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한 유씨가문전용 특별병실에선 아무도 눈치채진 못했...
촛불들로 잔잔히 밝혀진 거실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간간히 훌쩍대는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게 애초의 목적이자 명분이었지만 온 사방이 고요해진 지금도 소파에 나눠앉은 두 그림자는 딱히 아무말이 없었다. 정지화면인 듯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속에 작은 불빛들만이 일렁였다. "..이제 좀 괜찮아?" 조용해진 덕화의 눈치를 살피던 여가 먼저 무거운 침...
뚜르르르- 뚜르르르-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제발 좀 받아봐 덕화야, 제발-" 차사생활 300여년만에 처음보는 케이스였다. 본래대로라면 아직 명부팀에 이름을 올릴 일 조차 없는, 무엇하나 남 부러울 것 없이 예정되어있던 탄탄대로의 명운이 공수표로 돌아간다는 내용까진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쳐도 하필이면 왜 하루아침에 바뀐 그...
"22기 김차사, 선배님들 맛있게 드십시오!" "어어 그래, 다들 수고했으니 편히들 먹어~~" 시끌벅적한 고급 이자까야 한켠을 차지한 검은 정장의 무리들 속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여의 앞으로 별안간 값 비싼 사케병 하나가 들이밀어졌다. 금은보화라도 얻은 듯 의기양양한 동기의 표정에 헛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냉큼 옆자리를 차지한 그가 기다렸다...
뚜벅뚜벅- 늦은 저녁, 인적이 드문 절간 한켠의 사당으로 향하는 발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고 문간을 넘어 돌로 된 계단을 부지런히 올랐다. 반듯하게 맨 넥타이와 긴 코트자락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휘날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윽고 사당 앞에 멈춰선 그림자 하나가 하얀 입김과 함께 긴 숨을 내쉬었다. 조부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홀로 찾는 이곳이 마치 처음인...
연말연시가 가까워 오며 오히려 늘어난 일감과 망년회 등등으로 격무에 시달리게 되는 건 이승의 사람이나 저승사자나 그닥 다를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저번보다 다크써클이 좀 더 짙어진 듯한 후배가 편의점에서 사서 내미는 하루야채에 스트로우를 꽂으며 미리 수량확인을 마친 관할명부서류에 싸인을 하려던 손이 조금 멈칫거리다 이내 늘 하던 대로 '김차사'라 반듯이 적...
도깨비가 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영 사라졌다. 행여나 치킨무로 변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던 자의 어리석음을 비웃듯 위대하신 천지신명께선 그가 바라던만큼, 오히려 너무도 잔인하다 싶을만큼 깔끔하게 그 존재 자체를 이승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어느덧 1년.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과 존재가 도깨비를 잊었다. 다만 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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